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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MSRUN

맘스런매거진

#엄마들이 보는 세상

비 오는 날의 자존감

2019-09-23

바쁘게 시간을 보내던 그렇고 그런 날들 중 하루였다. 나는 하늘에서 쏟아지는 장대비를 맞닥뜨렸다. 짙게 드리운 먹구름과 묵직한 소리를 내며 곤두박질치는 비. 우산이 없어서 하는 수 없이 걸음을 멈췄다.

뒤늦게 일기예보를 확인했다. 일주일 전부터 오늘 비가 온다고 예고했는데 그것도 모르고 지냈다. 과감하게 빗속으로 뛰어들 용기는 없었다. 그래서 괜히 손바닥을 내밀었다. 비의 온기가 느껴졌다.

차가운 줄 알았던 비의 온도는 미지근했다. 그동안 나는 초침을 쫓아 달리는 사람처럼 하루하루를 보냈다. 나의 얼굴은, 나의 정체성은 녹은 눈사람처럼 형체가 흐릿했다.

빗속으로 뻗은 팔의 방향을 앞쪽으로 기울이자 손바닥에 그러모아진 빗방울이 바닥으로 또르르 흘러내렸다.


이렇게 살아 있구나.

비 오는 날에 비로소 나를 생각한다. 허겁지겁 일을 마치고 나면 잠시 무언가에 홀렸다 깬 사람처럼 입술에 덧칠한 립스틱이 지워져 있다. 비상등만 켜진 낯선 건물의 1층 로비에서 화장품 파우치를 꺼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세수해 지우겠지만 그 순간 나는 화장을 고친다.

오늘도 나는 낯선 세상을 엿보았다. 기자는 어쩌면 타인의 삶을 훔쳐보는 직업이다. 이곳에 내가 다녀갔다는 사실을 누가 기억할까. 입도 뻥긋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를일.

다시 그렇게 원하는 기자가 되었지만 왠지 모를 무력감이 어깨 위를 떠나지 않는다. 다행히 불 꺼진 타인의 직장에서 듣는 빗소리가 나를 자꾸 먼 곳으로 데려가려고 한다. 몸은 솜사탕처럼 가벼워지고, 발가락에 힘을 줘 땅을 박차면 공중으로 톡 튀어오를 것 같다.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나를 내려다본다. 갑작스러운 비는 앞으로만 나아가려던 걸음을 붙잡았다. 우산도 없이 마주한 장대비는 잠시 잊고 있던 얼굴을 확인하게 했다. 내 자존감은 비 오는 날에만 찾을 수 있는 걸까.

거센 빗줄기가 가라앉을 때까지 이어폰을 꽂고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듣기로 했다. 어떤 문학인의 죽음이 오늘의 뉴스에 있다. 느리고 무거운 음악이 깔리고 고인의 생전 인터뷰가 엄지손톱만 한 이어폰을 통해 흘러나온다.

나는 불공평하다고 속으로 투덜거린다. 뉴스는 평범한 사람의 평범한 죽음은 실어주지 않는다. 뉴스에 실리는 죽음은 평범하지 않은 사람의 것이거나 평범하지 않은 죽음이어야 한다.

지나간 뉴스를 듣는 취미가 생겼다. 지하철에서 차창 밖 노을을 바라보거나 누군가를 하염없이 기다릴 때면 어제의 뉴스를 오디오로 듣는다. 어릴 때부터 들어온 앵커의 목소리는 오래 쓴 베개처럼 익숙하다. 새삼 그의 목소리가 늙었다는 생각이 들자 나도 나이를 먹었다는 사실이 실감났다. 열아홉 살에 들었던 그의 목소리를 스물아홉 살에도 듣고 있다. 앵커는 어느새 환갑을 넘겼다.

비가 가라앉았다.
가방을 머리 위로 들고 버스 정류장까지 내달렸다. 옷이 다 젖기 전에 버스를 탔다. 버스는 빗줄기를 헤치고 앞으로 쭉 나아갔다. 인터미션은 끝났다. 무대의 막이 다시 올랐다.
    
미안해, 실수로 널 쏟았어
저자 정다연

출판 믹스커피

발매 2019.09.25.

스물과 서른 사이에서
방황하는 당신을 위한 이야기
누구나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되면 지난날의 불안을 떨치고 안정을 얻을 수 있을 거라는 환상이 있다. 하지만 서른이 되어도 우리는 여전히 삶의 고난 앞에서 방황한다. 기자이자 작가인 저자는 이십대에 우울증을 겪었고, 실직을 경험했으며, 실연을 겪었다. 서른쯤 되면 멋진 어른이 되어 어떤 고민이든 척척 다 해결할 줄 알았는데, 삼십대가 되어서도 삶의 아픔과 불안은 멈추지 않았다. 저자는 이십대의 아픔과 서른쯤에 겪는 내면의 변화는 이상한 일이거나 누군가에게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고 말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히 털어놓음으로써 비슷한 아픔을 가진 사람들을 위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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